자동화 시장에서 PC와 PLC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그 결론은 ‘무엇이 더 우월하다’가 아닌 각자가 지향하는 방향과 강점이 다르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각기 유리한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때 자동화 시장의 혁신은 PLC라는 하드웨어의 등장에 집중됐다. 1960년대 말, 릴레이 배전반의 복잡한 배선을 단일 제어기로 통합해 로직을 구현한 PLC는 모든 면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직관적인 래더 프로그램(Ladder Logic) 기반의 전용 로더를 통해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변경할 수 있어 복잡했던 배선 작업을 대폭 단순화했다. 이후 PLC는 진화를 거듭하며, 제어 범위를 점차 확장해왔다.
한편 동시대 또는 그 이전의 컴퓨터는 말 그대로 연산 처리(Computing)가 주 역할이었다. 즉, 기업의 상업적 의사결정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970년대에 등장한 PC(Personal Computer)는 데이터를 연산하고 저장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렇게 PC는 IT(Information Technology), PLC는 OT(Operation Technology)라는 전혀 다른 분야의 다른 목적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초기의 PLC는 릴레이 제어반을 대체하며 단순한 On/Off 제어에 입력과 출력의 논리 조합, 그리고 Timer/Counter 등을 조합하는 형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 전력소자 등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PLC는 아날로그 신호처리, 통신, 온도제어, 모션제어 등으로 제어 범위를 넓혀갔다.
PLC 기술 트랜드를 들여다보면 소프트웨어적으로나 하드웨어적으로 지난 60년간 적지 않은 발전이 있었다. 래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ST(Structured Text), SFC(Sequential Function Chart), FB(Function Block)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 및 네트워크, 정밀한 모션제어까지, 현재 PLC의 제어 형태나 범위는 과거와 비교하면 꽤나 광범위하게 변했다. 이러한 PLC 기술의 발전은 많은 부분에서 IT 기술을 채용함으로써 가능해졌다.
User Defined Data Type, Instance, Class, Array, Alias 등 과거에는 PLC 사용자에게 다소 낯설었던 용어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며, Web Server, VNC, Remote Access와 같은 IT 영역의 기능이 PLC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PLC는 OT와 IT를 제어 플랫폼 내에서 통합하거나 연결하기 위해 꾸준히 진화해온 것이다(그림 1).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PLC 제조사들은 탄탄한 설치 기반과 충성도 높은 사용자층에 힘입어 비교적 보수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고수했다. 하지만 직접 개발한 네트워크나 프로그램 방식 등으로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능을 높이고 효율적인 방식의 프로그램으로 개선하는 등의 활동이 IT처럼 개방적이지 않고 Vendor의 제약이 많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결국 PLC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개발하는 것보다 IT 기술을 수용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유리해졌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Ethernet 기반의 필드버스(Fieldbus) 기술이다. 자연스럽게 IT 기술 발전에 편승하여 성능 확보를 할 수 있고, 더불어 미래지향적(Future-proof) 기술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PLC는 점점 PC와 유사해지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을 보여주는 예로, PLC의 편집 툴 환경과 PC의 Visual Studio, 그리고 PLC의 ST 언어(Structured Text)와 PC의 C# 언어를 비교해 볼 수 있다(그림 2). 실제로 객체지향 프로그램 방식, 일부 정주기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C 언어를 지원하는 모듈, MES와 DB 간의 직접 통신 기능, 심지어 PLC에 PC 모듈을 탑재하는 시도까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거나 통합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PLC의 가장 큰 무기인 안정성을 담보하는 하드웨어(일종의 블랙박스)는 예외지만 말이다.

이제 PLC를 단순히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라고 부르기엔 그 기능과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동화 시스템 전체를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PAC(Programmable Automation Controller)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PLC는 점점 높은 성능과 많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것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핸들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시간 데이터를 누적하고 분석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최근에는 설비단의 데이터 수집 및 분석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PC의 활용 또한 늘고 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부분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공장 설비에서 PLC와 PC가 상호 연동하며 공존하는 모습이 일반화되었다. 말그대로 제어는 PLC가, 데이터 관리는 PC가 맡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산업군에서는 PC가 대용량 데이터 처리뿐만 아니라 PLC와 다를 것 없이 설비 제어까지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그림 3). 이러한 PC 기반 통합 제어의 대표적인 예로써 반도체 설비를 꼽을 수 있다. 다만 전체 자동화 시장에서 보면 PC 제어 시장은 여전히 PLC에 비해 비중이 매우 적다. 그 이유는 PLC가 수십 년간 안정성을 기반으로 자동화에 최적화되어 온 반면, PC는 자동화에서의 역사가 짧고 진입장벽이 높으며(PLC 엔지니어 입장에서),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PC 또한 설비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PLC가 제어 범위를 확장해온 것처럼 PC 역시 특정 산업군에 국한되지 않고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Soft PLC, Soft Motion 등과 같은 기술을 통해, 과거 PLC가 수행하던 기능을 PC에서 구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거나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PC CPU의 성능 향상, Fieldbus 범위 확대(Remote I/O에서 Motion까지), IPC의 안정성 확보, RTOS(Real Time Operating System) 등을 꼽을 수 있겠다(그림 4).

이처럼 PLC와 PC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 각자의 전문 분야로 확장함에 따라, 꽤나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이 존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사용자 입장에서 느끼기는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선 두 기술이 직접 경쟁하거나, 양쪽을 모두 비교해 선택하는 장비 업체나 양쪽 전부를 아우를 수 있는 엔지니어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PC와 PLC, 각자의 전문 분야가 존재하며, 산업의 특성이나 과거의 관성, 그리고 굳어진 주변 인프라(Supply chain, 인적/물적 자원 등)로 인해 기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그 안에서 개선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경쟁 상대로 시장에서 대립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LC와 PC의 교집합은 앞으로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 가까운 미래에는 교집합 안에서 PC와 PLC라는 구분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사용자가 다양한 IT 기술을 폭넓게 수용하고 사용자의 집약된 기술과 노하우를 고스란히 녹여 넣고 사용자의 기술을 보호하여 사용자에게 시장 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김기훈 CEO
-모벤시스 기술영업 총괄
-로크웰오토메이션코리아 모션 비즈니스 총괄
-한국오므론 엔지니어 및 기술영업 담당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