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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자율제조 핵심 기술] AI로 재편되는 제조업…생기원, 제조AI 기술 상용화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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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이 제조 현장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며 품질검사와 설비진단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룰 기반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딥러닝과 트랜스포머 기반의 비전 시스템이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으며, 고정밀 진단과 유연한 공정 최적화가 가능해졌다. 특히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제조AI연구센터는 의료기기, 자동차 부품, 공정 설비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AI를 적용한 혁신 사례를 다수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제조업 혁신의 중심에 서 있는 AI 기반 품질검사 및 설비진단 기술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AI와 제조업, 새로운 융합의 시대

 

산업계 전반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적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제조업 또한 그 흐름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고 있다. 과거 자동화와 센서 기반의 제어 시스템에 머물렀던 제조 공정은 이제 AI 기반의 지능형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를 넘어 전반적인 생산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제조AI연구센터를 통해 AI의 실질적 적용 가능성과 기술 상용화를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생기원이 정의하는 제조AI의 핵심 적용 분야는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설계 단계에서는 소재설계, 제품설계, 공정설계 등 맞춤형 설계가 중요하다. 이후 생산에 들어가면 설비에 대한 상태진단, 고장예지, 수명예측 등의 설비진단이 요구되며, 제품이 설계된 대로 제조되었는지를 판단하는 품질검사와 성능검사가 뒤따른다. 여기에 물류 흐름을 위한 객체 감지, 경로 계획 등의 물류 최적화, 그리고 생산 공정 자체를 제어하고 디지털 트윈을 통해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공정관리까지 포함된다.

 

이처럼 제조업 내 다양한 단계에 AI 기술이 녹아들면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수준의 효율성과 정확도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이제 제조업은 더 이상 단순 반복의 산업이 아닌, 정밀한 판단과 빠른 적응이 요구되는 지능형 산업으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품질검사, 트랜스포머와 비전 AI의 도입

 

제조 현장에서의 품질검사는 단순한 불량품 선별을 넘어, 공정 최적화와 고객 신뢰 확보를 위한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AI 기반 품질검사는 사람이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미세 결함까지도 수치화하여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검사 정확도와 속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결함 검사는 규칙 기반(Rule-based) 접근 방식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 방식은 복잡한 형상이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결함에 취약하며, 새로운 유형의 결함이 등장하면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거나 재개발해야 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기원은 트랜스포머 기반의 비전 시스템을 품질검사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특히 의료용 카테터와 같은 고부가가치 중재기기의 검사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해당 카테터는 다양한 형상과 치수를 가진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으로, 기존의 자동화 검사를 적용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생기원은 AI가 카테터 단면 이미지를 분석해 검사 기준이 되는 ‘키 포인트’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이후 룰 기반 알고리즘이 이 키 포인트 간의 거리나 각도를 측정해 최종 품질 판별을 수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검사 기준이 바뀌어도 재학습 없이 키 포인트만 수정하면 되므로, 검사 효율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기술력은 특허청에서도 인정받아 ‘AI 기반 지능형 품질관리’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1위의 특허 출원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설비 진단, 센서와 AI의 결합

 

AI 기술은 품질검사에 그치지 않고 설비 진단 영역에서도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 설비 진단이란 생산설비의 현재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나 고장을 사전에 예측함으로써 유지보수 비용을 줄이고 가동률을 높이는 기술을 말한다.

 

생기원은 반도체 공정 중 브러시 세정 장비 사례를 통해 이를 잘 보여준다. 해당 장비에서 웨이퍼 위아래로 배치된 브러시는 평행하게 작동해야 정상 세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브러시가 미세하게라도 기울어지거나 마모가 발생하면 세정 품질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기원은 단 하나의 진동 센서만으로도 브러시의 기울기, 마모 정도, 세정 접촉 상태까지 감지하는 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은 센서 신호만을 분석해 100마이크로 단위의 마모도 측정이 가능하며, 기울기 방향도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고장 감지에 그치지 않고, ‘예지보전(Predictive Maintenance)’으로 이어지는 진일보한 설비 관리 방식이다.

 

또한 정수공정에서의 필터 압력 데이터 분석처럼, 시계열 데이터를 통해 향후 상태를 예측하고 공정 조건을 사전에 조정하는 접근도 주목받고 있다. 압력 상승을 예측해 미리 필터를 교체하거나 세정을 수행함으로써 설비의 수명을 연장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AI 기반 설비 진단은 단순 자동화의 한계를 넘는 ‘스마트 유지보수’의 시대를 열고 있다.

 

유연한 AI 모델과 범용성 확보

 

제조 현장의 AI 적용이 확산되면서, 기술 도입의 유연성과 확장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AI 시스템은 특정 제품이나 상황에 맞춰 모델을 별도로 학습시켜야 했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조금만 바뀌어도 모델 재학습이 필요했다. 이는 AI 도입의 진입 장벽이자, 공급 기업과 수요 기업 모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기원은 ‘프롬프트 기반 범용 AI 모델’이라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모델은 신발, 마우스, 창문 등 사용자가 박스 형태로 지정한 객체를 기준으로 실시간 카운팅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모델로 다양한 객체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품목마다 개별 모델을 학습해야 하는 비효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3D CT 이미지의 경량화 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3차원 CT 데이터는 고용량 파일로 저장되어 메모리 부담이 컸지만, 최근에는 NeRF(Neural Radiance Field)와 같은 신경망 기반 모델을 활용해 3D 데이터를 함수 형태로 압축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저장 공간을 기존의 1/10 수준으로 줄이는 동시에, 고화질 데이터를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정밀한 레이블링 없이도 학습이 가능한 ‘약지도 학습(Weakly Supervised Learning)’도 제조AI에서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미세 조직 이미지에서 정확한 외곽을 일일이 따지 않아도 박스 형태만 제공하면 AI가 그 형태를 유추해 학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제조업에서 AI를 더욱 쉽고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이상탐지와 파운데이션 모델의 도전

 

결함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AI가 제품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면, 제조 현장의 검사 효율성은 극적으로 향상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이상탐지(Anomaly Detection)’ 기술이다. 이 기술은 정상 데이터만으로 학습한 뒤, 이후에 유입되는 데이터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생성형 AI 기법을 접목해 이상 여부뿐 아니라 비정상 발생 부위까지 식별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퓨저 모델을 활용해 정상 이미지만 학습한 AI가 비정상 데이터가 입력됐을 때 해당 영역을 시각적으로 표시해주는 방식이다. 이처럼 결함 라벨링 없이도 비정상 탐지가 가능해짐에 따라, 제조 현장의 데이터 라벨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동시에 대규모 학습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도 제조 분야에 도입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메타(Meta)의 SAM(Segment Anything Model)은 1100만 장의 이미지로 학습돼 새로운 데이터를 처음 접해도 세그멘테이션이 가능하다. 하지만 제조 데이터는 일반 인터넷 이미지와 달리 공개된 데이터가 적고 형상도 특수해, SAM과 같은 범용 모델이 제조 도메인에선 성능이 저하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제조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며, 국내 연구진들도 이를 위한 독립적인 학습 데이터셋 구축과 모델 설계에 나서고 있다. 이는 향후 제조 산업 전반에 적용 가능한 범용 AI 플랫폼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주며, 제조AI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결론 및 향후 전망

 

AI 기술의 적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문가가 필요하다. 현장 데이터를 이해하는 도메인 전문가, AI 모델을 설계하는 기술 전문가, 그리고 시스템 연동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AI 시스템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될 때, 제조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창출하는 산업 혁신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제조 현장은 여전히 센서의 설치 위치, 데이터 수집 기간, 공정의 계절성 등 수많은 변수와 마주한다. 단순히 모델 정확도만으로는 상용화가 어렵다. 따라서 생기원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은 ‘적용 가능한 AI’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앞으로의 제조업은 AI 기술을 무기로 품질과 생산성을 모두 끌어올리는 산업으로 진화할 것이다.

 

오토메이션월드 임근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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