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트랜스포메이션(RX)’이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로봇산업협회 김진오 회장은 로봇을 단순한 자동화 기기가 아닌 ‘산업 아키텍처의 중심’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로봇은 타임머신이 아니라 스페이스 머신”이라며, 인간의 시간 효율이 아닌 공간 혁신을 주도하는 기술로 규정했다. RX는 기존의 대량생산 중심 1세대, 인간 협업 중심 2세대를 넘어선 3세대 산업혁명이다. 로봇 기업이 시스템 설계·작업 재구성·공간 혁신까지 통합 제공하며 산업 구조를 다시 짠다. 팬데믹 이후 급부상한 로봇 러시와 피지컬 AI, 휴머노이드의 역설은 RX를 가속하는 핵심 동력이다. 김 회장은 “현장이 로봇화되지 않으면 AI 전환(AX)은 무의미하다”며, RX를 산업혁신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이제 제조·바이오·물류·국방 등 전 산업이 RX의 무대 위로 올라서고 있다.
로봇 트랜스포메이션의 출발점
“로봇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재정의하는 도구다.” 한국로봇산업협회 김진오 회장은 이 한 문장으로 자신의 38년을 정리한다. 기계공학과 열유체를 공부하던 그는 카네기멜론대 로보틱스 박사 1기생으로 입학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 기업을 거쳐 삼성전자 초대 개발팀장·사업부장을 역임했고, 이후 40대를 국가 로봇정책 설계에 바쳤다. 그 과정에서 그는 “똑같은 길을 걷지 말라”는 사회의 요구와 고독한 실험정신 속에 자신만의 로봇 철학을 세웠다. 1990년대 일본에는 500개 이상의 로봇 개발 전문회사가 있었지만 한국에는 단 하나도 없었다.
김진오 회장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첫 로봇 개발 전문기업을 세우고, 400종 이상의 산업용·특수 로봇을 만들어냈다. 고온·질산·초건조 등 극한 환경에 쓰이는 로봇을 개발하며,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를 개척했고, 결국 한국 시장의 한계를 넘어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강한 파트너와 일해야 엔지니어도 성장한다”는 그의 신념은 이 시절 만들어졌다. 그는 “약한 고객을 도와주면 실패하지만, 강한 고객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 철학은 이후 ‘로봇 트랜스포메이션(RX)’의 사상적 뿌리가 된다.
로봇의 3단계 진화 : 대량생산, 협업, 트랜스포메이션
김 회장은 로봇의 역사를 세 단계로 정리한다. 1세대는 대량생산의 상징이었다. 1959년 첫 산업용 로봇이 등장해 1961년 GM의 생산라인에 적용되며, 포드를 제치는 계기가 됐다. 핸들링과 툴링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는 장치’로 여겨졌지만, 실상은 비인간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인간 대신 맡은 도구였다. 그는 “로봇은 일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적 노동에서 해방시켰다”고 강조했다.
2세대는 인간과 로봇의 협업이 확산된 시기다. 1990년대 등장한 협동로봇은 인간의 참여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렸다. 인간은 로봇의 한계를 보완했고, 모바일 로봇의 확산은 작업 공간을 수평적으로 확장시켰다.
3세대에 이르러 산업은 ‘로봇 트랜스포메이션(RX)’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로봇 기업이 장비 공급자가 아닌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자로 진화하며, 공정·작업·공간을 통합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로봇은 타임머신이 아니라 스페이스 머신이다”라며 “공간의 자유를 제공하는 기술이야말로 진짜 혁신”이라고 말했다. RX는 단순 자동화가 아닌 공간 재구성의 혁명으로, 산업 생태계를 완전히 새로 짜는 개념이다.
로봇 러시와 피지컬 AI : 산업이 로봇을 찾는 시대
팬데믹은 로봇 산업에 ‘로봇 러시(Robot Rush)’를 촉발했다. 김 회장은 “이제는 로봇이 시장을 찾는 시대가 아니라, 시장이 로봇을 찾는 시대”라고 말했다. 과거 로봇 업계는 로봇+엔터테인먼트, 로봇+밀리터리 등 ‘로봇 플러스’ 형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 했지만, 지난 20년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인력부족이 아니라 ‘노동 회피’가 원인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기 싫어’ 로봇을 찾기 시작했다.
건설, 물류, 제조, 바이오 등 전 산업이 로봇 자동화를 요구하며 RX의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마존이 2012년 키바시스템을 인수하며 만든 물류혁신은 그 상징이다. 로봇은 단순 운반, 인간은 피킹을 담당하는 단순한 역할 분담이지만, 이 협업은 물류 전반의 라지스케일 로보틱스(large-scale robotics) 시대를 열었다. 현재 아마존은 100만 대 이상의 로봇을 운영 중이다. 김 회장은 이 흐름을 ‘RX의 사회적 전환점’이라 정의했다. 여기에 퍼셉션-코그니션-액션(PCA) 기술과 피지컬 AI가 결합하며, 이제 로봇은 특정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도구’로 발전하고 있다. RX는 이 기술을 산업 전체의 인프라로 확장시키는 철학이다.
로봇공학에서 로봇학으로 : 건축적 사고의 전환
“로봇을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로봇이 잘 작동할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김 회장은 로봇을 기술 중심이 아닌 건축적 학문으로 본다. 과거의 로봇공학이 속도·정밀도·기계성능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로봇학’은 인간·작업·환경·공간의 조화에 초점을 맞춘다. RX 시대의 핵심은 ‘작업을 로봇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이다.
그는 대표 사례로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를 언급했다. 인간의 복합 작업을 로봇으로 그대로 대체하려다 공정이 60~80개로 늘어나며 문을 닫았다. 반면 김 회장이 설계한 셀컬처 자동화 공정은 기존 대비 3분의 1 규모로 줄었고, 사람은 8시간만 로딩·언로딩을 돕는 구조로 전환됐다. 로봇은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며 생산을 이어간다. 그는 이를 ‘8h/24·7 모델’이라 부른다. RX는 이런 ‘아키텍처 혁신’의 집합체다.
로봇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중심으로 이동했고, 기업의 수익 구조 역시 로봇 자체가 아니라 공간·작업·인력의 통합 디자인에서 창출된다. 김 회장은 “로봇 역량을 가진 개인과 국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로봇을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언어로 정의했다.
휴머노이드의 역설과 ‘사람이 못하는 일’의 철학
김진오 회장은 휴머노이드의 등장을 ‘로봇학의 역설’로 본다. “로봇월드는 인간을 라인 밖으로 밀어내지만,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장과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라며, 휴머노이드의 성공은 기술적 진보보다 명확한 ‘미션’ 설정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수술 로봇 ‘다빈치’가 복강경으로 불가능했던 전립선 수술을 가능하게 하며 상용화된 것처럼, 휴머노이드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존재 이유가 생긴다.
폼팩터의 제약으로 공간 활용이 제한되는 휴머노이드보다, 다수의 로봇 협업 시스템이 오히려 유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작업이 먼저 진화하고, 그다음이 로봇의 진화”라고 강조한다.
결국 성공의 조건은 △강한 파트너십, △불가능하거나 기피되는 작업에 집중, △작업 재설계의 우선순위, △라지스케일 적용성 확보다. “로봇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 국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로봇의 윤리적 방향은 기술이 아닌 사회가 결정해야 한다. 휴머노이드의 미래는 인간의 ‘대체’가 아니라 ‘확장’에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RX가 먼저, AX는 그다음
김진오 회장은 DX(디지털 전환)와 AX(AI 전환) 논쟁에 ‘RX(로봇 전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현장이 로봇화되지 않으면 AX는 아무 의미가 없다.” 로봇 밀도는 높지만 실제 사용 대수는 정체된 한국 산업 구조를 지적하며, “이제는 라지스케일, 즉 대규모 로봇화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 플러스’나 ‘로봇 퓨전’보다, 산업 외부에서 로봇을 찾아오는 ‘로봇 러시’를 만들어내는 사회가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래의 산업 경쟁력은 기술 개발이 아니라 로봇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히 현장에 녹여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변화를 리드할 사람은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한국로봇산업협회가 추진하는 차세대 리더 양성 프로그램은 이 문제의 해답이다. 김 회장은 “RX를 통해 산업의 근본을 바꾸는 리더를 길러내야 한다”며, 로봇을 국가혁신의 ‘첫 버튼’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로봇 혁신이 먼저, AI 혁신은 그 다음이다.
오토메이션월드 임근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