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AI 시대 시작-②] “사람을 닮은 로봇, 산업을 닮은 기술” K-휴머노이드, 현실이 되다

2025.11.04 11:26:28

‘K-로봇 시대’가 열린다. 한국기계연구원 류석현 원장이 ‘2025 글로벌 기계기술 포럼’에서 국가 전략 프로젝트 ‘K-휴머노이드’의 비전과 로드맵을 공식화했다. 이 로봇은 단순한 산업 자동화가 아닌, 인간의 일상과 감정을 함께 학습하는 ‘동반자 로봇’을 목표로 한다. 류 원장은 “로봇은 산업과 사회의 균형점을 다시 세울 기술”이라며, 표준 하드웨어 플랫폼·듀얼 프로세스 브레인·전신 촉각 피부라는 3대 축을 공개했다. 총 5년간 2천억 원 규모의 컨소시엄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이번 계획은 2027년 버전1, 2030년 버전2, 2035년 다분야 확장이라는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했다. 한국형 로봇 표준화, 데이터·AI 내재화, 반도체 칩까지 포괄하는 ‘풀스택 기술 전략’이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의 새로운 좌표로 주목받고 있다.

 

 

휴머노이드 러시, 한국은 왜 ‘K 전략’을 택했나

 

세계는 지금 ‘로봇의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세계에는 10억 대의 로봇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미래 가치는 자동차가 아니라 옵티머스(Optimus)가 만든다”고 공언했다.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인공지능 이후의 주력 산업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점찍었고, 그 격전지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조금 다른 경고를 던졌다. “휴머노이드의 순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류석현 한국기계연구원장은 “대한민국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감소, 노동력의 공백, 돌봄 인력의 한계가 동시에 겹친 지금, 로봇은 더 이상 ‘선택의 기술’이 아니라 ‘존속의 기술’로 다가오고 있다. 류 원장은 이 시대적 질문에 대한 답으로 ‘K-휴머노이드’를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로봇의 기능 향상이 아닌, 한국적 맥락에 맞는 인간-기계 공존의 모델을 강조한다. “산업현장만이 아니라, 가정과 복지, 공공안전 영역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K-방산, K-컬처에 이어 “K-휴머노이드야말로 대한민국의 차세대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계가 기술 경쟁에 몰두할 때, 한국은 ‘사회와 산업을 함께 설계하는 로봇’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즉,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어디에 쓰일 것인가’다.

 

 

20년간 다져온 풀스택 역량 : 부품에서 시스템까지

 

한국기계연구원의 K-휴머노이드 프로젝트는 하루아침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 기관은 지난 20년간 산업용 로봇을 중심으로 소재, 부품, 공정,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R&D를 축적해왔다.

 

먼저, 소재 분야의 대표성과는 형상기억합금(SMA)을 이용한 인공 근육 구동기다. 이 기술은 기존 섬유 기반 구동체보다 수백 배 높은 효율을 자랑하며, 사람의 근육처럼 수축·팽창을 반복한다. 이미 웨어러블 로봇, 로봇 의수·의족에 적용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모터형과 와이어형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동 모듈을 개발해 한 대의 휴머노이드에 30개 이상을 장착할 수 있다. 이 모듈은 동력 효율을 극대화하면서도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해, 인간의 근육 움직임에 가까운 유연한 동작을 가능케 한다.

 

공정 기술에서도 고난도의 협업 로봇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와이어링 하니스 작업용 듀얼 로봇이다. 두 대의 로봇이 한 몸처럼 선을 잡고 연결하는 이 기술은 고정밀 동작의 정점으로, 향후 휴머노이드의 손가락 제어 기술에 직결된다.

 

시스템 레벨에서도 기계연은 이미 다양한 실증을 수행했다. 양팔 협업 로봇 ‘아미로(AMIRO)’, 계단을 오를 수 있는 크롤러 휠체어,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 모듈형 이동 플랫폼 등이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비대면 검체 채취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상용화 타이밍을 놓쳤다. 류 원장은 이를 두고 “기술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축적이 결국 K-휴머노이드의 핵심이 된다. 소재부터 시스템까지 완결된 스택을 가진 국가는 많지 않다. 이 풀스택은 곧 K-휴머노이드가 ‘시작부터 완성까지’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표준화된 인간형 플랫폼, 산업과 일상의 경계를 잇다

 

K-휴머노이드의 하드웨어 플랫폼은 단순한 로봇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형 산업의 표준을 상징한다. 키 160cm, 무게 55kg. 이 크기 안에 인간의 전신 감각과 운동학적 구조를 담았다. 손에는 30N의 파지력, 22자유도(DoF)의 능동 관절을 탑재해 정밀 조립과 섬세한 파지 동작을 구현한다. 전신에는 10mm 해상도의 촉각 센서를, 피부에는 2mm 공간분해능의 광학형 다중 센서를 내장해 사람처럼 ‘촉감’을 느낀다.

 

이 촉각 시스템은 단순히 접촉을 감지하는 수준이 아니다. 로봇이 자기 위치를 파악하고, 표면의 질감이나 미끄러짐까지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신 감각을 실현하기 위해 기계연은 대면적 코팅 및 3D 프린팅 회로 기술을 활용한다. 이는 사람의 피부처럼 유연하면서도 내구성이 높은 로봇 피부를 가능하게 한다.

 

적용 분야는 명확하다. 첫 번째는 자동차 조립·검사 라인이다. 로봇이 운전석에 앉아 버튼을 누르고, 기어를 조작하며, 계기판을 확인하는 최종 검사공정을 수행한다. 이미 주요 완성차 기업과 협업 논의가 진행 중이다. 두 번째는 가정 내 가사 관리 전문가 2급 수준의 서비스다. 세탁, 청소, 정리정돈 등 일상적인 반복 작업을 수행하며, 사람과 협업한다.

 

이 모든 것은 ‘표준화’라는 하나의 기둥으로 묶인다. 휴머노이드 핵심 부품과 센서, 메커니즘을 표준화하여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성능평가·벤치마킹·수출 규격까지 통합한다. 류 원장은 “표준 없는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표준은 산업의 언어이자 수출의 문법”이라 강조했다. K-휴머노이드는 그렇게 ‘하드웨어 표준화’를 산업 혁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로봇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듀얼 프로세스 브레인 : 0.3초 안에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

 

류석현 원장이 ‘K-휴머노이드의 심장’이라 부르는 것은 두뇌, 즉 자율 성장 브레인(Autonomous Growth Brain)다. 이 브레인은 인간의 대뇌와 소뇌 구조를 모사한 듀얼 프로세스(Dual Process) 아키텍처로 설계된다.

 

대뇌는 고차원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클라우드와 네트워크를 통해 AI 모델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불러와 상황을 분석한다. 반면 소뇌는 온디바이스(On-Device)에서 운동 제어를 수행하며, 사람의 ‘반사신경’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류 원장은 “이 두 시스템이 결합하면 지능과 행동이 동시에 작동하는 로봇이 된다”고 설명했다.

 

핵심 목표는 0.3초 이내의 반응 속도다. 현재 기술 수준인 9초에서 30배 이상 개선된 수치다. 사람이 대화나 움직임에서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반응 속도가 바로 0.3초 내외다. 즉, 이 임계점을 돌파해야 로봇은 비로소 ‘인간과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이 시스템은 언어, 음성, 제스처를 통합 처리하며, End-to-End 보행, 전신 다중 접촉 제어, 상·하체 통합 제어 등 지능과 행동의 동기화를 이룬다. 주관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이 브레인을 기반으로 향후 K-휴머노이드 전용 반도체 칩 개발까지 추진한다. GPU 기반 구조에서 벗어나 저전력·저지연 연산을 실현하는 ‘엣지 인텔리전스’ 전략이다.

 

류 원장은 “브레인의 소뇌는 행동 전문가형 생성모델이고, 대뇌는 의사결정형 모델이다.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할 때 인간 수준의 사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브레인은 단순한 제어 시스템이 아니라 ‘로봇의 자아(自我)’를 구현하는 핵심 엔진이다.

 

 

난제, 그리고 협력의 해법 : 2천억 컨소시엄이 만든 ‘오픈 이노베이션’

 

K-휴머노이드의 길은 기술보다 협력의 문제다. 류석현 원장이 꼽은 세 가지 난제는 바로 이 프로젝트의 핵심 철학을 드러낸다.

 

첫째, 인간 수준의 고감각 촉각 시스템 구현이다. 전신을 덮는 다층 구조의 피부를 대면적으로 제조하면서도, 내구성과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계연은 3D 프린팅 회로와 대면적 코팅 기술, 부위별 맞춤형 촉각 센서 시스템을 병행한다.

 

둘째, 정교한 상체와 민첩한 하체의 결합이다. 알테미스(ARTEMIS) 같은 로봇들이 하체 중심이라면, K-휴머노이드는 상·하체 통합을 추구한다. 고순시출력 구동기, 경량 고출력 플랫폼, 인핸드 매니퓰레이션 기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셋째, 자율 성장(Self-Growing Intelligence)이다. 로봇이 미리 학습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외 상황 인지, 장절차 생성, 환경 적응 등은 개방형 AI 플랫폼과 데이터 팩토리가 함께 지원해야 한다.

 

이 거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5년간 약 2천억 원 규모의 컨소시엄이 구성됐다. 기계연·ETRI·생기원을 중심으로, KAIST·서울대·DLR 등 국내외 연구기관, 기업, 대학이 참여한다.

류 원장은 “한 기관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산·학·연·관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협력은 단순한 연구 연합체가 아니다. 각 기관이 보유한 AI, 센서, 제어, 반도체 역량을 하나의 ‘공통 인프라’로 연결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이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생태계다.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국가 전략 기술”이라고 말했다. 결국 K-휴머노이드는 기술의 도전이자, 협력의 실험이다.

 

2035를 향한 여정 : 실행력이 완성하는 K-휴머노이드의 미래

 

류석현 원장이 제시한 K-휴머노이드의 로드맵은 단순한 기술 개발 일정이 아니다. 2027년까지 인간의 기본 운동성을 구현한 버전1, 2030년 인간 수준의 조작성과 산업 실증을 갖춘 버전2, 그리고 2035년 조선·항공·방산 등 고난도 산업으로 확장하는 버전3로 이어진다. 그는 “5년, 2천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지만, 그 결과는 산업지도를 바꾸는 실험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핵심은 실행력이다. 기계연은 컨소시엄형 구조를 통해 출연연, 대학, 산업체가 실시간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로봇을 연구실 밖으로 끌어내 산업 현장에 투입하는 ‘실증형 개발 모델’을 실현한다. 류 원장은 “휴머노이드는 혼자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AI, 반도체, 소재, 데이터가 결합된 융합의 결과물”이라며, 협력이 곧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K-휴머노이드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 속에서 로봇은 ‘휴먼 어시스트 이코노미(Human-Assist Economy)’를 여는 국가 전략 기술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적절한 시기, 표준화, 지속 가능한 생태계 이 세 가지가 충족될 때, 2035년의 K-휴머노이드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한국이 설계한 ‘현실의 미래’로 완성될 것이다. 류석현 원장의 말처럼, “휴머노이드는 더 이상 영화 속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만들어야 할 현실의 기술”이다.

 

오토메이션월드 임근난 기자 |

임근난 기자 fa@hell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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