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살얼음판이다. 국내 대표 전기차 배터리 기업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관계가 차갑게 식었다. 성적 때문은 아니다. 두 기업 모두 3월까지 성적은 괜찮았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83% 높아졌고, SK이노베이션의 판매량은 4배 이상 급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은 건 2차전지 핵심기술 및 인력 유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지난 4월 30일, SK이노베이션에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의혹을 제기하며 소송을 한 상태다.
<사진 편집 : 김동원 기자>
‘명백한 기술유출’ LG화학 VS ‘기술력 자체가 다르다’ SK이노베이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두 기업이 손에 좋은 성적표를 쥐고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4월 30일,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핵심인력과 기술을 빼간다는 이유였다.
LG화학은 4월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연구개발, 생산, 품질, 구매, 영업 등 전지사업 전 직군에서 핵심인력 76명 빼갔다”고 주장했다. 또,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입사지원 과정에서 자사의 양산기술 및 핵심공정 기술과 함께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의 실명까지 상세하게 제출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입사지원 인원들이 집단적으로 공모해 핵심기술 자료를 유출시켰다는 게 LG화학의 의견이다.
SK이노베이션도 두 손 들고 있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은 5월 3일, 입장문을 내고 “우리의 배터리 개발기술 및 생산방식이 다르고 이미 핵심 기술력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이 올라와 있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고 맞섰다. 또, 이 기업은 “LG화학이 주장하는 형태인 빼오기 식으로 인력을 채용한 적이 없고 모두 자발적으로 온 것”이라며 “LG화학이 제시한 문건은 후보자들이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정리한 자료로 SK이노베이션 내부 기술력 기준으로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해 모두 파기했다”고 덧붙였다.
제소와 반박, 쉽사리 꺼지지 않는 갈등
두 기업의 주장은 팽팽히 맞선다. 이번 갈등의 주된 이유는 인력 유출과 핵심기술 유출이다. LG화학은 자신들의 주장을 방증하기 위해 올해 초 국내에서 열린 대법원 승소 사례를 예로 들었다. 올해 초에도 SK이노베이션 전직자 5명을 대상으로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열었는데 법원이 ‘영업비밀 유출 우려’와 ‘기술 역량 격차’를 모두 인정해 최종 승소했다는 것이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5명 전직자에 대한 법원 판결은 영업비밀 침해와는 거리가 있고 ‘전직자들이 당시 경쟁사와 맺은 2년간 전직금지 약정 위반에 대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두 기업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은 “이번 소송은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고, 정당한 경쟁을 통한 건전한 산업 생태계 발전 위한 것”이라 말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 임수길 홍보실장은 “전기차 시장은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만큼,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업계 모두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밸류체인 전체가 공동으로 발전해야 할 시점에 이런 식의 경쟁사 깎아 내리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SK이노베이션은 경쟁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고객과 시장 보호를 위해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과 어떻든 공방 길어질 가능성 커
LG화학이 이번 갈등에 대한 사안을 US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만큼, 앞으로 이곳에서 관련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ITC는 제소장 제출 후 30일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늦어도 이번 달 말까지 UTC가 조사를 할지 안할 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조사가 진행되고, 만약 ITC가 LG화학의 손을 들어준다면 SK이노베이션은 한국에서 개발한 배터리 신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이와 별도로 미국 연방법원에서 손해배상 판결이 날 경우 배상 책임도 지게 된다.
결과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정도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 법률전문가는 “ITC는 조사가 시작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판정을 내리게 되어 있어 결과는 빨리 나올 수 있다”면서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판결에 한쪽이 불복할 가능성이 높아 공방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