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0나노(나노미터, 10억분의 1m)에서 7나노로 곧장 가지 않고 징검다리 형태로 8나노 공정 개발을 공식화했다. 기존 공정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해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7나노 공정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8나노 공정 개발을 공식화하고 고객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 역시 최근 임원들에게 "8나노 공정 고객확보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시기적절한 투자와 제품 개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회로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 소자의 선폭(gate length, 게이트폭)을 줄이는 '미세화'는 반도체업계의 기술 리더십을 의미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양산 중인 10나노에서 차세대인 7나노로 곧장 이행하지 않고, 중간에 8나노 공정을 추가했다. 7나노 등 차세대 공정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기존 공정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차세대 공정까지 가는 시간을 벌고 성공한 기존 공정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해 고객사를 확보하는 '하프노드'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10나노 1세대(LPE, Low Power Early) 로직 공정 양산을 시작했다. 여기에 시장이 원하는 성능을 더한 2세대, 3세대 공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올해 말 2세대인 10나노 LPP(Low Power Plus), 내년에는 3세대인 10나노 LPU(Low Power Ultimate) 공정 양산에 들어간다. 10나노 공정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성공적인 양산으로 검증된 공정을 최대한 길게 활용해 투자대비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처럼 공정 수명을 늘리는 것은 7나노 등 차세대 공정으로 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다. 7나노, 5나노 등 다음단계로 갈수록 공정 개발 성공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고객사들을 뺏기지 않으려면 최신 공정을 통해 잡아둬야 한다. 애플을 대만 TSMC에 뺏기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가장 큰 고객은 퀄컴과 삼성전자 IM사업부, 엔비디아 정도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최대 고객인 퀄컴의 입맛을 맞추는 동시에 그동안 비중이 작았던 중소형 팹리스를 상대로도 영업에 공을 들여왔다. 이를 위한 맞춤형 전략이 '수명 연장'이라는 분석이다.

업체들의 또 다른 고민은 7나노 공정개발에 필요한 기간 동안 경쟁업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7나노부터는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길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양산 시점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사이 경쟁사에 고객사를 뺏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10나노에서 7나노로 바로 이행하지 않고 8나노 공정을 개발하기로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기존에 성공한 공정 노드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 일부 기술을 추가 적용해 칩의 사이즈를 줄이고 성능을 개선하는 식이다. 이는 반도체업계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는 것으로, 더 이상의 미세화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빚어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가 삼성보다 먼저 7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할 경우 삼성은 애플을 뺏긴데 이어 퀄컴까지 TSMC에 뺏길 가능성이 높다"며 "EUV를 처음 사용하는 도전적인 상황으로 개발 시간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에 삼성은 8나노와 같은 '하프노드'를 고객사에 빨리 공개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은지 기자(seei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