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티]
지멘스 최고경영자(CEO)인 조 케저(Joe Kaeser) 회장은 최근 열린 제1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통일한국, 기업에서 미래를 찾다 - 디지털 시대의 비즈니스와 사회 재창조’라는 주제로 연설을 진행했다. 조 케저 회장은 이날 지멘스가 동·서독 경제 통합에 기여한 과정을 비롯해, 통일과 관련된 한국 기업의 역할 및 기회에 대해 설명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핀다.
조 케저 회장은 30여 년 이상을 ‘지멘스맨’으로 재직했으며, 2013년 8월 지멘스그룹 회장에 취임해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 조 케저 회장
1950년대에 태어난 독일인으로서 ‘통일로 가는 길’이 길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조 케저 회장은 “독일이 통일되기까지 40년 이상 걸렸으며, 1989년에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며, “이 과정에서 지멘스 같은 대규모 서독 기업들은 제 몫을 다했다. 1991년 6월까지 지멘스는 구 동독 지역에서 2만 명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상황은 어려웠고 소요 비용도 상당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디딘 모든 발자취가 가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재 독일은 통일된 국가다. 물론 지금도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제 독일인들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며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멘스는 100년 이상 전 세계 200개국 이상에 진출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조 케저 회장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변화에 잘 적응하는 국가들은 앞서가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뒤처졌다”면서 “적응력이야말로 비즈니스와 사회를 재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조 케저 회장은 또한 국가가 이러한 ‘적응력의 DNA’를 갖기 위해 구축해야 할 세 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탄탄한 산업 기반
제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견고한 제조업을 갖춘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앞서간다. 제조업에 투자되는 1달러는 다른 분야에서 1.4달러의 GDP를 추가로 창출할 수 있고, 제조업에서 창출되는 1개의 일자리는 다른 분야에서 최대 2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또한 제조업은 전 세계 무역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제조업이 국가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변화와 세계화에 잘 적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제조업이 GDP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로 인해 수많은 산업들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디지털화는 중간 단계를 단축시켜 왔기 때문이다. 또 디지털화는 가치사슬 내에서 가장 약한 단계를 없애는데, 이와 같은 일이 제조업에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제품을 개발하고 설계하는 소프트웨어는 공장 현장의 기계와 공급자의 IT 시스템을 연결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현실의 가치사슬과 동일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 존재한다. 가상 세계와 현실의 융합은 오늘날 제조업에서 불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독일 정부는 이러한 제조업 디지털화의 영향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의 제조업 미래에 대한 야심 찬 비전은 ‘2020년까지 스마트 공장 1만 개 구축 계획’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위한 정부 지원 계획은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할 수 있다. 지멘스는 이미 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 제품수명주기관리) 소프트웨어의 선두 공급 기업이며, 상위 25개 자동차 OEM 업체 중 24개 기업을 고객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포트폴리오를 통해 고객들이 디지털 기업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제조업의 디지털화는 단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닌, 경제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교육과 혁신 체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국가는 강력한 교육과 혁신 체계를 갖춰야 한다. 재능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국가에는 혁신을 꾀할 수 있는 ‘교육받은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화로 모든 산업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기술은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대학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가르쳐야 한다. 디지털 영역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평생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근로자들은 커리어를 쌓는 동안 최신 기술을 습득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제조업의 디지털화와 산업 공정 내 3D프린팅의 통합으로 혁신을 위한 기회들이 창출되고 있으며, 제조업은 최고의 역량을 가진 젊은 세대를 영입할 정도로 훌륭해졌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제조업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의 예로, 지멘스와 로컬 모터스(Local Motors)의 협업을 들 수 있다. 로컬 모터스는 자동차 생산에 3D 프린팅을 활용하여 자동차 생산을 성공시킨 미국 기업이다. 지멘스는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CAD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지멘스는 대기업이면서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 또 명확히 규정된 프로세스와 구조가 있는데, 여기에는 장점도 있지만 업무 속도를 늦춘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스타트업들은 관료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며 창의적이다. 지멘스는 거대 글로벌 기업의 안전성, 운영능력, 재정적인 힘과 스타트업의 창의력, 속도, 유연성을 결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멘스가 이행하고자 하는 이른바 ‘혁신 기업(Innovation AG)’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주인의식과 책임감
적응력을 갖추기 위한 세 번째 전제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 국가의 문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실수와 실패가 용납되는 국가들은 혁신에서도 앞서는 경향을 보인다. 스위스의 경우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 이유는 바로 스위스 국민들이 기업가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국민 개개인이 사업을 하도록 독려하는 문화이다.
조 케저 회장은 “개인적인 포부는 사내 곳곳에 이 같은 주인의식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 약 35만 명의 지멘스 직원들은 ‘지멘스를 항상 내 회사처럼 생각하면서 행동하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26만 명 이상의 지멘스 직원들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이 주어진 역할 이상을 기꺼이 수행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조 케저 회장은 이를 토대로 지멘스가 미래에 스스로 재창조할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확신했다.
디지털화가 장기화됐을 때 사회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사회적 합의에 대해 재논의하고, 새로운 근무 제도를 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정 근무시간이 구시대 산물로 변할 수도 있다. 규제도 조율해야 할 것이며, 국경 없는 인터넷을 통제하는 규제 역시 규모 면에서 국경을 초월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는 우리가 비즈니스와 사회를 재창조하도록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효율적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강력한 교육 및 혁신 생태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 세대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도록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희성 기자 (npnted@hell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