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의 등장
닌텐도 앞지른 세가의 도전정신
패미컴으로 게임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닌텐도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게임 소프트웨어 보급을 위해 선택한 롬팩의 생산 단가가 고민 중 하나였다. 게임의 고품질, 대용량화가 가속되면서 점점 소프트웨어 가격 상승을 부추겼고, 결국 패미콤의 판매량에도 영향을 끼치게 됐다. 당시 닌텐도 ‘패미콤’의 소프트웨어는 개발비와 생산단가를 포함해 약 1만 엔(한화 12만원) 수준으로 판매가 되는 경우가 발생했었다.
닌텐도는 롬팩의 비싼 가격으로 인한 판매율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6년 2월 21일 ‘디스크 시스템’의 판매를 시작한다.
디스크 시스템은 양면 기록이 가능한 플로피 디스크를 게임 배포 매체로 사용했는데, 비교하자면 지금의 CD나 DVD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롬팩, 해결책은?
닌텐도는 이 플로피 디스크를 ‘디스크 카드’로 ‘디스크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한 기기를 '램 어댑터'로 이름 붙여 판매를 시작한다. 이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용량인 128Kb(킬로바이트)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1986년 당시 주로 제작되었던 게임의 용량이 50~100kb이었기 때문에(1986년 발매된 ‘메트로이드’는 약 80kb) 대부분의 게임은 디스크 카드 한 장으로 판매가 가능했다.
디스크 시스템은 롬팩과는 달리 용량이 늘어나더라도 제작 단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소프트웨어 판매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게임을 진행하다가 디스크 카드를 바꿀 수 있어, 최대 용량을 넘는 게임도 무난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닌텐도 디스크 시스템은 게임 소프트의 판매량 상승과 시장 확대 역할 뿐 아니라 추가 수입원 발생 시키는 고마운 제품이었다. 재사용이 가능한 ‘디스크 카드’ 역시 한번은 구매를 해야 하며, 별도로 판매되는 '램 어댑터' 판매로 단위 수익률도 높아지는 효과를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디스크 카드는 다시쓰기(Re Write, RW)가 가능하다는 특징 덕에 소매점과 편의점에서 소프트웨어를 교환해 줄 수 있어 판매 물량 부족한 일이 발생할 염려가 없었던 것도 장점 중 하나였다. 게이머 입장에서는 신작 게임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흔히 말하는 ‘Win-Win’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대를 앞서간 불운
현재 CD와 DVD, 블루레이로 대표되는 광학 디스크를 통한 게임의 보급은 일상화 되어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롬팩을 통한 판매가 주류인 상황에서 추가 기기를 통해 디스크를 게임 보급의 중심으로 삼는 아이디어는 매우 획기적이고 도전적인 시도였다. 보급되는 소프트웨어(게임)의 가격을 낮추는 대신 추가 기기(HW)를 별도 판매해 닌텐도의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였기 때문.
하지만 램 어댑터의 보급률은 2004년을 기준 7% 가량으로(패밀컴 판매량 약 6100만 대) 이는 닌텐도가 바라던 목표량을 밑도는 저조한 수치였다. 즉, 최신 전자제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 대중에게는 시대를 앞서간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면서 대용량 롬팩이 가격이 싸진 것도 디스크 시스템에는 악재였다. 휴대와 보관성, 안전성이 높은 롬팩이 디스크 카드보다 게이머에게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플로피 디스크는 자성을 사용한 기록 장치임으로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예로 고출력 스피커 위에 놓은 디스크 카드의 데이터가 스피커의 자성의 영향으로 데이터가 지워졌다는 보고도 있었다.
게다가 고가 사치품에 속하던 게임을 모두 사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교환해 가며 게임을 하던 당시 게이머들은 추가 기기(애드온)이 필요한 디스크 시스템보다 롬팩이 효과적이고 경제적이었다는 점도 ‘디스크 시스템’의 보급에 악영향을 미쳤다.
세가의 해결책은?
닌텐도가 롬팩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디스크 시스템을 내놓은 것처럼 세가도 새로운 매체를 시험하는 단계를 거친다. 세가가 선택한 제품은 IC(집적 회로)칩을 이용한 카드형 롬 시스템인 '세가 마이 카드 시스템’(이하 마이 카드)이다.
일반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ROM과 달리 IC칩은 기억 장치 뿐 아니라 연산 장치(PU, Processing Unit), 전기 신호를 증폭하는 트랜지스터(Transit Resistor, Transistor), 저항기, 축전기 등을 탑재할 수 있다. 이런 IC칩은 콘솔 게임기의 부족한 메모리를 대체한다거나, 데이터 계산(연산)의 일부분을 수행하는 등 게임기가 가진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가 가능했다(게임기의 제어를 담당하는 회로와 계산과 게임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회로를 가진 아케이드 게임처럼).
이 시스템은 세가 마스터 시스템의 전신인 SG-1000과 SG-2000 Mark2 버전에서는 상용화 되지 못하고, 3번째 모델인 SG-1000 Mark3(세가 마스터 시스템)부터 기본으로 장착이 되기 시작했다. 또한 기존에 판매된 SG-1000 Mark2 이하 버전을 위해 '카드 캐처'라는 추가 기기를 판매했다.
하지만 IC칩 역시 디스크 카드 처럼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콘솔 기기를 보완하기 위한 회로 설계는 담당 공학자들이 게임 설계와 제작 단계에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에 인력과 초기 투자 비용이 과도해 진다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제작된 마이 카드는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제작 단가가 롬팩보다 비싸져 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세가는 한때 마이 카드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게임의 대용량화(당시 기준)에 따른 비용문제로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개발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잃은 ‘마이카드’는 역사의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지게 된다.
참고로 한국에서 판매되던 ‘삼성 겜보이’(세가마스터시스템의 한국명) 역시 마이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세가가 판매한 게임 보다는 하이콤 제조, 판매한 마이 카드(MSX게임이 들어있었다)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가의 반격
8비트 시대가 끝나갈 무렵, 거치형 게임기(콘솔 게임기) 시장의 후발 주자였던 세가의 반격이 시작된다. 세가는 닌텐도 보다 한발 앞서 최초의 16비트 게임기로 기록된 ‘메가드라이브’를 1988년 일본 출시를 시작으로 북미와 일본, 한국에 출시한 것이다. 세가는 최초의 16비트 게임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에 롬팩을 꽂는 슬롯 부분에 커다란 글씨로 16비트라는 글씨를 금색으로 표기하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당시 컴퓨터는 인텔의 80286(286 컴퓨터)과 80386(386 컴퓨터)가 주요 사용되었고, 고밀도 집적회로 개발기술이 발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때문에 세가는 콘솔 게임기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8비트 CPU를 대신 16비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MC68000이라는 칩을 사용했다. 또한 게임에서 연산 속도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 Process Unit)로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Z80을 2개 탑재하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메가드라이브가 채택한 CPU MC68000은 약 8Mhz, GPU인 Z80은 3.5MHz 의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었다. 흔히 Hz(Hertz)로 표현되는 주파수의 단위는 1초에 주파수의 진동수를 수치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1Hz는 1초에 한번 진동하는 것을 뜻한다. 괘종시계에 붙은 시계추가 1초에 한 번씩 왕복하는 것은 1Hz로 비유할 수 있다.
즉, 8MHz는 1초마다 8000 번의 진동이 발생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CPU는 전기적 신호의 유무를 0과 1로 표현하는 이진법을 사용해 덧셈과 뺄셈(CPU 구성 중 가산기가 이에 해당한다)을 기본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이 진동의 유무를 사용해 계산을 수행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게임에서 몬스터를 때리는 동작이 약 10Hz대의 계산 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800마리의 몬스터를 한 번에 처리하는 기술도 이론상으로는 게임에 구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 메가드라이브의 경쟁 기기인 닌텐도의 패미컴은 N2A03 CPU를 사용해 약 2MHz의 처리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니 단순 비교하면 약 4배의 성능차이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사실은 좀 더 복잡하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하드웨어 구성을 선택한 ‘메가드라이브’는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와 화면 전환 능력이 개선되어 보다 속도감 있는 게임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한다.
또한 화면에 표시되는 이미지나 그래픽을 처리하는 GPU를 2개 사용하는 메가드라이브는 CPU 성능과 절묘한 시너지를 일으켜 엄청난 속도로 화면을 전환할 수 있었다. 이런 메가드라이브의 특징은 1년 뒤에 발매되는 닌텐도의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콤’(북미명 Super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보다 부드러운 화면을 표시할 수 있었다.
또한 메가드라이브는 512개의 색상 중 64개의 색상을 하나의 스프라이트(몬스터 1개로 이해하면 된다)에 동시에 표현할 수 있었다. 이는 경쟁 기기인 ‘패미콤’이 64개의 색상 중 오직 4개의 색상만을 하나의 스프라이트에 표현 가능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메가드라이브’가 얼마나 고성능 기기였는지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예이다.
닌텐도 앞지른 세가의 도전정신
세가는 본격적인 메가드라이브(북미명 제네시스, 한국에서는 슈퍼겜보이-슈퍼 알라딘보이로 판매) 시장이 형성된 1990년대부터, 전 세계 게이머들이 열광한 게임 소닉더헤지혹을 시작으로 아케이드에서 인기를 얻은 골든액스, 수왕기를 연이어 히트시킨다.
또한 메가드라이브 고유 게임으로는 선더포스 시리즈와 베어너클, 판타지스타, 샤이닝포스 시리즈를 내놓으며 인기를 얻는다. 이때 세가의 게임 제작의 특징은 기기의 성능을 살린 속도감과 도전정신이다. 닌텐도 게임이 대부분 모험을 통한 재미를 추가했다면 세가는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방식의 게임성을 제시하면서 게임 시장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듯 게임의 속도감과 기존의 재미에 도전하는 실험적 작품들은 북미와 유럽 게이머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소닉더헤지혹은 세가마스터시스템 당시보다 더욱 빨라진 속도와 화려한 효과, 점프버튼 하나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 이었다.
세가는 북미와 유럽(일본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의 반응에 힘입어 한때 콘솔 게임 시장 점유율 65%를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게 된다. 당시 콘솔 게임시장이 아타리 쇼크의 후폭풍과 닌텐도라는 걸출한 게임사의 등장으로 독점적 시장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만일 세가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의 콘솔 게임 시장은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이클 잭슨의 부활
20~30대 게이머들이라면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는 게임을 한 번쯤은 플레이 해봤을 메가드라이브로 출시된 문워커(1988년)는 마이클 잭슨이 직접 게임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 인기를 끌었다.
마이클 잭슨의 몸값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세가는 당시 거품경제 시기였던 일본에서 엄청난 이득을 거두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같은 무모한 스타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었다.
마이클 잭슨은 스릴러 앨범이 전 세계에서 7천만장 이상 팔리는 대박 행진으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은 모두 전설이 되고 참여한 기획은 모두 흥행몰이에 성공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세가가 얻은 마케팅 효과는 투자비용 이상이었다.
이 게임에서 마이클 잭슨은 로봇으로 변신하거나 레이저를 발사하는 등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게임으로 마이클 잭슨을 접한 일부 한국 게이머는 마이클 잭슨이 가상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메가드라이브 주요 고객인 10대 청소년은 마이클 잭슨 열풍에서 한 발 비켜나간 세대여서 영화 문워커의 설정을 몰라서 생긴 이야기이다.
문워커 영화에서 마이클 잭슨은 평화를 사랑하는 가수지만 사실은 외계인이란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그는 아동 복지와 교육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이 범죄에 연루되자 그들을 구하러 마이클 잭슨이 나선다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게임에서의 마이클 잭슨은 지구인의 모습으로는 범죄 조직과의 싸움이 힘에 겨웠고 영화에서처럼 때마침(!) 지나가던 유성의 힘을 빌려 '문워커'로 각성,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면이 영화에 포함되어 있었다.
메가드라이브용 문워커 게임에서도 이런 부분이 묘사되어 있는데 스테이지를 공략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먹으면 마이클 잭슨이 로봇으로 변신해 하늘을 날거나 레이저를 쏘는 등 게임 공략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세가의 기둥
세가 메가드라이브의 성공 스토리 속에서 소닉은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이다. 지금에야 마리오의 인기가 높아(기네스북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캐릭터로 등재됐다) 비교하기가 민망하지만, 1990년도 초반만 해도 소닉은 마리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기 캐릭터였다.
소닉은 세가가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마리오 같은 게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작에 돌입, 탄생한 캐릭터이다. 마리오가 점프를 사용한 몬스터의 처리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소닉은 거침없이 스테이지를 질주하는 속도가 매력 포인트이다. 이런 매력은 화려하고 빠른 게임을 좋아하는 북미-유럽 시장의 게이머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소닉 시리즈는 메가드라이브로 발매된 3개의 게임으로 전 세계 120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서삼광 객원기자 (seosk@dailygame.co.kr)